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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U

GNU 프로젝트는 GNU is Not Unix 의 재귀 약자다. 리차드 스톨만이 공개한 운영체제인 GNU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시작했다.

초기의 컴퓨팅 환경은 지식을 특정회사나 단체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들의 컴퓨터 지식은 서로 자유롭게 공유되었다. 저작권의 엄격한 영향력 아래 있던 다른 산업 분야와는 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다른 특징을 가지게 된 이유는 컴퓨터를 통한 지식공유 기반인 인터넷이 국제적인 학자의 공조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흔히 미국방성의 필요에 의해서 개발되었다고 얘기되는 인터넷은 "군용 컴퓨터 조직망을 위한 연구 성과" + "영국 국립 물리학 연구소의 상업적 네트워크 연구 성과" + "프랑스 Cyclades의 과학자 네트워크의 연구 성과" 가 융합되어서 만들어진 기술이다. 다양한 요구를 가진 단체가 국적을 뛰어넘은 협력을 통해 개발된 역사가 고대 그리스에서 볼 수 있었던 지식을 공유하는 전통을 만들어낸 것이다. 인터넷 자체가 전 지구적인 컴퓨터 네트워크의 통합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의 표준 개발환경을 정의한 OSI7 Layer와 각 계층이 포함하고 있는 TCP, UDP, IP, ICMP, RIP등의 프로토콜들이 기업과 국가, 특정단체에 종속되지 않고 개발된다.

이러한 자유로운 환경에서 해커문화문화가 싹텄다. 이들은 열정적인 프로그래머 였으며, 즐겁게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그 결과와 기술들을 공유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1980년 이후 산업자본의 성장모델이 한계에 부닥치자 인터넷을 그 탈출구로 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광속도로 정보가 이동하는 인터넷을 활용하여 금융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분야를 개척한다. 금융산업은 생산과는 전혀 상관없이 정보의 이동만으로 차익을 얻어내는게 가능하다.

그러자 곧 모든 회사들이 자신의 기술을 숨기고 기술을 독점하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된다. 수십년간 공유되고 전승된 기술과 인프라 하에서 덩치를 불리우자 이제 그것을 제어하고 독점하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과거의 해커들은 회사에 소속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소프트웨어와 기술은 회사가 독점하게 되었다. 해커들에 의한 자유로운 소프트웨어가 점점 사라지자 학교, 연구소, 회사는 기존에 사용하던 자유 소프트웨어 대신 상업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GNU는 이러한 행태에 반대하여, 1980년대 이전의 해커문화로의 회귀를 선언하며 만들어졌다.

1985년 스톨만은 GNU 선언문를 발표하고 비영리 기관인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을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1989년 GPL(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를 만든다. 여기에 카피레프트의 개념이 포함된다. 지금 카피레프트는 하나의 문화운동이 되었다.

마침내 1991년 GPL 기반의 리눅스커널이 발표되면서 GNU/리눅스 환경이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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